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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변호사 | 화폐가 아닌 관계로 만드는 세상, ‘커먼즈’ 본문
책 읽어주는 변호사 | 화폐가 아닌 관계로 만드는 세상, ‘커먼즈’
서로 간의 관계(커머닝)를 통해
새로운 우리를 형성해 나가는 것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화폐를 매개로 거래된다. 즉,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데, 우리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인간의 노동력마저 상품화된다는 사실이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우리는 평생 스스로 상품이 되어 가치를 증명해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이미 자본주의적 사고가 깊이 내면화된 탓인지 이것이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시스템은 우리가 세상을 특정한 방식(구분 짓기, 대상화 등)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이 안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욕망을 본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예컨대, ‘인간의 소유욕은 무한하다’).
《커먼즈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자본주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인 ‘커먼즈(commons)’를 소개하는 책이다. 다소 낯선 개념인 ‘커먼즈’는 그 단어 자체에서 유추 가능하듯이 단순하게는 ‘공동의 것’과 같은 식으로 정의될 수 있는데, 이렇게 정의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공유지’, ‘공유재’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커먼즈 이론가들과 활동가들은 커먼즈를 단순히 자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근본적인 전환의 패러다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근대적 소유 개념에 익숙한 나머지 ‘공유’라는 개념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 우리 법체계상 공유, 즉 공동소유 개념으로 인식하여 지분의 형태로 ‘소유’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럼 커먼즈가 무엇이라는 걸까? 학자들은 ‘커먼즈’라는 명사 형태가 아닌 ‘공통화하다’는 뜻의 커머닝(commoning)이라는 동사형 사용하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공통적인 것(the common)이라는 추상명사를 사용하여 “내가 무언가를 함께 할 때 만들어지는 것”, “무언가를 함께 하는 활동 그 자체”로 설명하기도 한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상품관계가 지배적 규칙, 혹은 ‘상식’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커먼즈의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는 커먼즈가 우리 역사 속에 수없이 존재했고, 현대에도 커먼즈의 모습을 띠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커머닝’의 모습을 띠는 것으로 공부모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각자 책을 읽고 와서 함께 토론하는 공부모임은 토론 과정에서 다양한 생각들이 얽혀 혼자 책을 읽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는데 이때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지 계산하거나, 만들어진 결과를 분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무언가는 각자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지고 동시에 이런 공통의 경험으로 ‘우리’라는 관계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결국 커머닝은 소유 개념에 기반한 ‘공유’가 아니라 ‘나누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고 있고 이에 따라 커머닝 역시 활발히 일어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모두가 다양한 활동으로 만들어낸 커먼즈를 화폐로 환산되게 만들고 몇몇 사람에 의해 사유화되도록 한다. 저자는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고 플랫폼을 활성화하면 어느 순간 이용료가 붙거나 억지로 광고를 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를 예로 들며, 이렇게 “우리는 인터넷 플랫폼의 집합적 생산자(커머너)이지만 플랫폼에 지대를 지불하며 커먼즈로부터 분리”된다고 이야기한다. 도시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도 마찬가지의 예다. 지역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소수의 건물주들이 아니라, 다채로운 상점이나 공간을 만들고 그곳을 방문하며 상호작용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가치는 임대료로 환산되어 건물주에게 귀속된다.
지난해 느닷없이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개관하여 철거 전 국내에서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었다. 원주에는 아카데미극장 외에도 단관극장이 몇 군데 더 있었는데, 멀티플렉스의 성행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하나둘 사라졌고, 아카데미극장은 하나 남은 단관극장이 되었다. 아카데미극장마저 철거 위기에 처하자 원주시민들은 극장 보존을 위한 모금, 문화활동을 시작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가 6년 가까이 이어지자 미온적이던 원주시도 2021년 “원주시가 아카데미를 사들인 뒤 시민 소통공간으로 꾸며 극장 역할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극장 건물과 토지를 매입했다. 그런데 2022년 6월 새로 취임한 원강수 원주시장은 갑자기 극장을 철거하겠다고 밝혔고, 시민들은 원주시에 정책토론 등을 제안하며 재고할 것을 거듭 요구했지만 결국 극장은 철거됐다. 원주시민들은 아카데미극장이 시민들의 것임을 선언하며 원주시의 일방적인 철거 강행 방침이 잘못됐음을 지적했다. 원주시민들은 왜 아카데미극장을 지키려고 했을까? 해당 공간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공간, 즉 커머닝의 공간으로서의 가능성을 봤던 것이 아닐까? 즉, ‘아카데미극장이 시민들의 것’이라는 주장은 아카데미극장을 ‘커먼즈’로 인식한 데 따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수년간 이어온 극장 보존활동부터 커머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명, 문화예술활동 등 다양한 모습의 보존활동은 그 자체로 서로가 섞이며 공통의 경험으로 우리를 형성해 나가는 활동이었으니까 말이다.
책에는 자본주의하에서의 소유에 기반한 근대적 인식이 그렇게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고, 오히려 오래전 과거에는 커먼즈가 더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이었다는 점, 자본주의가 이 모든 것을 해체하여 현재의 우리 인식을 지배하게 만든 것이라는 점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며 상세히 알려준다. 이론에서 나아가 난곡희망의료협동조합, ‘빈집’, 경의선공유지, ‘빈고’ 등 국내에서 시도된 다양한 커먼즈 운동의 사례를 들려주기도 한다.
얼마 전 시대의 큰 어른 홍세화 선생께서 작고하셨다. 선생은 한겨레신문에 마지막으로 쓴 칼럼에서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를 이야기했다. 《커먼즈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니 이 역시 커먼즈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독점적 소유, 양적 팽창(성장)이 아닌 서로 간의 관계(커머닝)를 통해 새로운 나, 우리를 형성(성숙)해 나가는 세상(커먼즈)을 당부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김소리 변호사 (법률사무소 물결·밝은책방 대표)
책 읽어주는 변호사 | 화폐가 아닌 관계로 만드는 세상, ‘커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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